펜(Pen)에 대한 생각

Posted at 2007/08/13 05:55// Posted in 무엇
 펜은 올곧다. 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필기구들은 올곧다. 그 한결 같은 올곧음으로 주인의 의사를 써내려간다. 펜은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는다. 그런 펜의 속성이 좋아서 항상 펜이란 것에는 애정을 갖고 있지만 펜에게는 또 하나의 속성이 있었다.

  펜은 사치품이다. 흔히 문구점에서 파는 1회용 볼펜들에게 하는 소리가 아니다. 좀 더 쓰기에 편하고, 좀 더 취향에 맞는 생김새의 펜을 찾다보면 어느새 펜의 값은 필기구를 넘어 사치품의 수준까지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그 정도 수준의 펜을 쓰는 사람들에게 종종 펜은 필기구가 아닌 장신구로 변질되어 있다. 그러한 속성은 싫다.

 지금은 두 속성 사이에서 필기구 본연의 속성에 충실한 펜을 쓰고 있다. 빨강과 겅정 볼펜이 샤프와 한 몸을 쓰고 있는 멀티펜이다. 원래는 만년필을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왼손잡이. 펜의 문제라기 보다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적는 글쓰기 탓이지만 왼손잡이가 연필이나, 만년필을 쓰기에는 손이 적어놓은 글위를 지나가면서 묻고, 번지게 만드는 단점이 있었다.

 이것은 학창시절에는 참기 어려울만큼 짜증나는 문제였다. 연필이나 샤프의 글을 쓸 때 사각거리는 촉감은 참 좋았지만 함참 필기를 하고나면 손을 씻어야 한다는 게 너무 불편했다.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과거에는 붓을 세워서 썼다는데 생각이 미쳐 붓을 써보려 했지만 그 부드러운 친구를 잘 다루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수양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결국에는 볼펜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종이와 아무런 협상도 대화도 없이 그저 미끄러지는 필기감은 매우 싫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쓸 수 밖에. 이제는 익숙해져서 그 느낌을 즐기고 있지만 말이다.

  지금 주로 쓰고있는 것이 볼펜이지만 모든 쓸 것들은 다 좋아한다. 현재 볼펜과 함께 가장 많이 쓰고 있는 것은 키보드다. 쓰던, 두드리던,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 것은 훌륭한 필기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느긋이 손으로 쓸 때의 행복감과 손을 움직이는 즐거움은 펜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이 글 또한 펜으로 적은 것을 다시 정리해서 두드리고 있지만 아마, 키보드로만 썼다면 결코 이런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며 이 블로그 또한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다른 블로그를 만들면서 썼지만 이제 그블로그는 안쓸테다. 세 개나 운영하기는 너무 귀찮아서 다시 들고 왔다. 덕택에 마지막 두 줄은 의미불명의 소리가 됐구만.
2007/08/13 05:55 2007/08/13 05:55

노숙자가 당당한 일인가?

Posted at 2007/08/13 05:53// Posted in 무엇
 어제 아침에 있었던 일. 퇴근하는 길에 어쩐지 빵이 먹고 싶어서 이것저것 샀다. 빵봉지를 손에들고 빵집을 나와 걷는데 몇 걸음 걷지도 않아 노숙자를 만났다. 노숙자를 만나서 싫은 건 아니다. 예전에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무슨 연유에선지 육교 위에서 그 비를 졸딱 맞으며 고개도 들지 못하고 가만히 엎드려서 구걸하는 분에게 가지고 있던 돈-몇 천원 뿐이었지만-을 다 드린 적도 있으니까.

 그런데 이 노숙자는 내게 다가왔다. 건물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가 마침 내가 빵을 사가는 걸 보고  온 것이다. 그런데 "아저씨, 잠깐만." 하면서 하는 말이 가관이다. "노숙잔데, 배고프니 빵 하나만 줘요." 뭐, 배고프면 적극적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먹을 걸 나눠달라는데 야박하게 굴 것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일부러 제일 싸고 맛없을 것 같은 빵을 주면서 생각했다. '이 사람 이래서 노숙자가 된 건가.'

 아직 그런 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태도다. 자기 보다 적어도 열 살은 어릴 법한 사람에게 먹을 걸 구걸하는데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마치 주는 게 당연하다는 태도가 어떻게 가능한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저 사람은 내게 구걸을 한 게 아니다, 빵을 주는 나는 구걸하는 사람에게 줬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람은 길거리에서 '담배 좀 빌립시다.'하는 정도의 감각이었던 거다. 그까짓 빵, 사실 비싼 케이크 같은 것도 아니고 몇 백원에서 몇 천원 사이의 빵들인데 그 사람이라고 마음 먹으면 못 사먹을 리가 없었다. 다만 수중에 돈도 없고 마침 출출한데 먹을거 들고 지나가니 말이나 한 번 붙여본 거였으리라.

 여태 나는 노숙자를 거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생각을 바꿔야겠다. 불쌍한 거지 같은 게 아니고 그냥 물질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보헤미안쯤으로 봐줘야겠다.


…라고 역시 다른 블로그에 썼었는데 생각해보니 이것이야말로 비록 지금 몰골이 비루하나 결코 비굴할 수는 없다는 선비의 풍모로구나.
2007/08/13 05:53 2007/08/13 05:53

아프간 피랍사태 관련 반응을 보며

Posted at 2007/08/13 05:48// Posted in 무엇

  처음에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들이 어디 소속이고 무엇을 했는지 알고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지금도 참 개념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만 뜻밖에 지독한 개신교에 대한 증오들을 접하니 놀라웠다. 그런 글이 어찌나 많은지 계속 읽다가 글에 멀미를 느껴 속이 매스꺼워질 지경이다.

 이건 마치 끝없는 메아리 같다 다들 평소의 불만이나 기분 나빴던 개신교의 모습을 하나씩 이야기 했을 뿐인데 인터넷의 여기저기에 부딛쳐 공명하고 증폭하니 마치 거대한 한덩어리의 악의를 접하는 기분마저 든다. 더군다나 이 거대한 악의의 덩어리는 줄어드는 대신 개신교를 옹호하는 목소리와 얽혀 점점 커져서는 숫제 죽으라는 소리를 직접 내뱉는 수준까지 되었으니 참으로 무섭다. 앞으로 유사한 사태가 벌어지면 글을 읽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머리가 어질어질 해지는 경험은 한번으로 족하니까.



…라고 다른 블로그에 썼었는데 디워 덕택에 이꼴은 별로 볼일이 없어서 좋다. 이거 하난 좋구만.

2007/08/13 05:48 2007/08/13 05:48

아카마츠 켄 씨는 대단한 작가인 듯

Posted at 2006/08/06 02:25// Posted in 만화
그림을 넣어서 써야 하지만 스캔하기 귀찮으니 나중에 추가하기로 하고 씁니다.

러브히나가 러브 인 러브란 제목으로 국내에 나오던 시점부터 봤는데 처음에는 그저 깔끔한 그림체를 가진 할렘물 작가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사실 썩 훌륭하다고 할 만한 작품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러브 인 러브를 다시 읽고 마법선생 네기마를 보니 정말 대단한 작가입니다. 그저 여자애나 잘 그리는 작가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는 데 제가 보는 눈이 없었던 겁니다. 처음에 읽으면서 놓치고 지나갔던 장점들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캐릭터가 많아지면 그 모두의 개성을 살리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캐릭터 간의 관계가 꼬이는 건 물론이거니와 캐릭터의 생김새와 성격의 다양성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제가 아는 한에서는 이런 부분을 능란하게 처리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빨간 망토 챠챠의 아야하나 민 씨와 타카하시 루미코 여사 정도입니다.

그런데 아카마츠 켄 씨의 마법선생 네기마는 네기가 가르치는 여자애만 30여 명에, 선생과 마법사들 등 이리저리 합하면 꽤 많은 수의 캐릭터가 여태까지 나온 고작 14권의 분량 안에 집적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명탐정 코난 처럼 50권이 넘어가도록 고정 출연은 몇 명 되지도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늘 단순히 머릿수가 많은 게 아니라 그 중에 일회용 캐릭터가 거의 없고 복선이 치밀하게 깔려있어서 작가가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연출력도 무시할 수 없는 게 러브히나 때도 그랬지만 한 컷에 주요인물을 몰아 넣는 기술이 압권입니다. 적게는 십여 명에서 대규모 군중이 동원되는 컷에서도 여백의 조절이 꽤 잘되어 있고 캐릭터의 성격이 묻히는 일도 드뭅니다. 흐름이 멈춘다는 느낌도 들지 않고 밋밋한 느낌이 될 수 있는 컷도 비스듬히 처리하거나 거리감에 왜곡을 주는 식으로 실제 카메라를 통해서 보고있는 느낌이 들게 연출하여 효과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또한 그 현란한 액션은 참으로 이 사람이 그린 액션 장르의 만화를 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게 합니다. 의외로 세세한 묘사에 홀리는 거지요. 인간관계와 연출, 액션 등의 설계에 모두 능하여 재주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칭찬을 잔뜩 쓰기는 했습니다만 결정적인 문제가 아다치 미츠루 씨와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야구와 소꼽친구가 왠만하면 빠지지 않는 아다치 미츠루 씨 처럼 아카마츠 켄 씨는 귀여운 여자아이가 넘쳐나는 개그라는 틀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하긴, 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디치 미츠루 씨의 크로스 게임을 산 걸 보면 아카마츠 켄 씨의 작품들도 계속 사게 되겠지만요.
2006/08/06 02:25 2006/08/06 02:25